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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을 풍물과 함께한 삶”
낙동민속보존회 고문 손 운 택씨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풍물배워 우리고장의 민속놀이를 전국 무대에 펼쳐 보는게 소원풍물패의 상쇠로서 평생을 살아온 손운택(孫雲澤)씨. 구포지역에서 태동한 낙동민속보존회의 사범으로서, 고문으로서 회원들을 지도하기 시작한것은 80년대말, 즉 1989년도.. 평생 전국을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돌면서 다니다가 부산에 오게 된 것이 80년대 들어서였다. 그리고 1987년도에 구포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 북구지역 구민체육대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었는데 대회의 가장 신명나는 경기는 우리소리,우리가락을 뽐내는 동 대항 풍물경연대회였다.시장이 있는 구포1동에 살게 된 손운택씨는 체육대회장에서 구포1동 풍물팀과 만나게 되어 그들을 잠깐 지도해 주었는데 당장 효과를 발휘하여 풍물경연대회 1등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이때 구포의 젊은이들에게 손운택씨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조직된 것이 북구민속보존회.손운택 선생을 사범으로 모시고 우리 고장의 민속단체가 이렇게 정식 출범한것이 1989년도였다. 그 뒤 우리고장의 전통문화단체인 낙동향토문화원과 보조를 같이하여 회 명칭도 낙동민속보존회로 재출발하였다. 그리고 북구지역 문화축제인 낙동민속제가 1993년 태동되면서 지역 전래의 고유민속인 구포대리 지신밟기, 구포 장타령, 그리고 감동진 별신굿을 재현 하는 등 평생을 쌓아온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풍물패의 상쇠로서, 구포대리지신밟기의 선소리꾼으로서의 역할을 거침없이 해내는가 하면 구포 장터놀이에서 각설이 차림에 장타령을 구성진 가락으로 뽑으면서 깡통을 두드리며 흥을 내는 모습을 보면 민속인으로서 타고 난 팔자임을 느껴지게 한다.이처럼 손운택씨는 평생 몸에 베어온 풍물의 가락을 후진들에게 전수시켜 대를 잇게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낙동민속보존회의 고문으로서 역할을 성심성의껏 해내고 있다.풍물과 함께 살아온 손운택씨의 태생지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금계리이다. 해방이 되던해인 1945년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집에서 소달구지를 몰던 큰머슴 김정달씨에게 꽹과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전통의 지신밟기 가락과 민요를 익혔다. 그러나 어릴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오자 큰형과 가출하여 객지를 떠돌게 되었다. 가는곳마다 풍물패를 만들어 상쇠로서 패를 이끌어 17세에 안강 강서에서, 19세에 영일군 기계면에서, 군 입대를 하여 사단에서, 군 제대후 강원도 장성광업소에서, 29세에는 안동군 길암면에서 상쇠잽이로 이름을 날렸고 경주에 돌아와 신라문화제에서 입상하고 강원도 철암선 철도공사장에서도 풍물을 놓지 않았다. 45세에 안동군 길암면에 다시 들어갔다가 3년후 47세때 여동생이 있는 부산으로 오게되었고 부산의 아미농악에도 동참하였다. 1989년 구포와의 인연으로 낙동민속보존회의 사범으로서 우리 고장에 정착하게 된것이다.13세부터 진갑을 넘긴 오늘까지 50여년을 가는곳마다 풍물과의 인연으로 생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온 상쇠잽이 손운택씨. 이제 그 뿌리를 우리 고장에서 내리고 있는것이다.우리 고장의 전통 민속놀이인 구포대리 지신밟기가 금년 부산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획득하면서 손운택씨가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인간적인 갈등속에서도 전통문화를 일깨워왔던 그 순수한 염원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이 고장에 자리잡은지 어언 10여년! 이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우리 고장의 전통민속놀이를 전국의 무대에서 재현 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손운택씨는 오늘도 바쁜 일정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
1997.11.25
조회수 : 984
‘세계희귀 나비전’ 등 복지관별 다양한 행사 이어져
복지의 달을 맞아 관내 7개 복지관에서는 더불어 사는 복지사회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구포3동 장선사회복지관에서는 지난 6일부터 이틀간 ‘삶이 있는 장터’를 열어 소년소녀 가장돕기를 위한 바자회를 운영하였으며 금곡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8까지 2백여종 6천여점의 세계희귀나비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주민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금곡동에 소재한 공창복지관에서는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온가족이함께관람 할 수 있는 가족영화를 상영했으며 덕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지난 8일 청소년의 정서함양을 위해 청소년 문화의 밤과 자원봉사자 위안 행사를 열었다. 이밖에 동원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7일‘불우이웃 김장보내기 기금’ 조성을 위한 알뜰시장을 운영하였으며 남산정복지관에서도 지난 1일 장학금 마련을 위한 먹거리 장터를 운영했다. 한편 화정 종합복지관에서는 영세가정 겨울나기 바자회와 복지관 수강생 100명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는 등 다함께 만드는 살기좋은 복지공동체 실현에 앞장서고 있어 복지의 달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1997.11.25
조회수 : 871
11월 복지의 달 -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통합 보건사업팀
● 북구보건소 가족 보건계 (통합보건 사업팀)복지사회 구현위해 능동적 활동전개구민 건강 책임지는 의료봉사 산실4명으로 구성된 북구보건소 통합보건사업팀은 환자를 돌보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더불어사는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 능동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영세주민을 대상으로 거동불능·불편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와 치료를 전개하는 한편 사회복지개발원의 이동목욕차량의 지원을 받아 의료서비스를 실시하여 보건복지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 65세 이상 독거노인 403명에 대하여 기초조사 결과 건강에 이상이 있는 분들은 의료기관과 연계로 정밀진료를 의뢰하였고 자원봉사자를 통한 가사봉사와 정서상담을 펼쳐 보건복지의 의미를 다시한번 인식케 하였다. 이외에도 관내 경로당 77곳을 주 2∼3회 방문하여 건강검진과 체조를 실시하여 무료한 노인들에게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97년 연중사업으로 저소득 지역을 대상으로 가정환경 기초조사를 실시한후 관리 대상자를 선별하여 건강관리함으로써 거동불편·불능과 고혈압, 당뇨등 만성퇴행성 질환자의 건강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의 효율적인 관리와 수준높은 교육을 통하여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이바지 하고 있다. 이와같이 통합보건사업팀은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더불어 함께사는 사회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구민건강을 책임지는 의료봉사의 산실로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다.봉사는 삶의 보람 - 자원봉사자 이인숙씨『봉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고 삶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나이가 들면 꼭 봉사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어쩐지 내게는 거리가 먼 아주 착하고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건소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결심을 굳히고 봉사의 길을 걷게되었다는 이인숙씨(39). 그가 하는 일은 간호사들과 함께 경로당, 독거노인, 거동불편환자들을 찾아가 이동목욕, 건강체조, 허리찜질등 보건서비스를 해주는 일이다. 다른 봉사와는 달리 대부분 환자들을 다루는 일이라 잘할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간호사에게 배워가며 최선을 다한 결과 그 나름의 요령도 터득했단다. 또한 요즈음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더욱 바쁘다. 「찾아가면 반겨주고 봉사에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은 이제 남이아니라 한 가족입니다.」이씨는 봉사를 통해 삶의 보람과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특히 이인숙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어머 이렇게 사는 사람도 다 있네"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번 기회에 자신과 같은 자원봉사로 삶의 보람을 함께할 뜻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사랑의 자원봉사자 모집●모집분야: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이용사, 미용사, 에어로빅 강사, 다른분야까지●홀로사는 노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 위생이 불결한 환자, 마음과 몸이 외로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눌 자원봉사자를 구합니다.●연락처:북구보건소 ☎ 341-0117∼20
1997.11.25
조회수 : 824
나의 제언 - 21세기는 물의 시대, 물을 살립시다.
박용수/낙동강오염방지협의회 회장우린 가끔 물의 중요성을 까맣게 잊어버린채 물을 물쓰듯하며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60년대만해도 낙동강변에 사는 우리는 강물을 그냥마셨고 또 밥을지어서 먹었는가하면 멱감고, 조개잡고, 게를 잡았던 그야말로 낙동강은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지난날의 추억일 뿐……이제 낙동강은 극심한 오염으로 4급수로 전락되고 있다. 특히 겨울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오염은 더욱 심해지고 물은 점점 부족해 지고 있다. 우리 부산과 경남도민의 젖줄이자 부산시민의 식수인 낙동강을 살리기위해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에서는 한목소리를 내며 "낙동강 살리기, 위천공단 결사반대" 운동을 전개해왔다. 낙동강에 대한 추억과 낭만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지키자는 것이다. 생수만 찾을게 아니라 낙동강을 살리는 일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환경오염으로 생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산좋고 물맑아 금수강산이라 자랑하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이대로가다간 물을 수입해 먹어야 할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유엔에서 물의 날(4월 23일)을 정한 것은 물의 소중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의 몸은 70-80%가 유기물질로 구성되어 있어 물을 먹지 않고는 10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다아는 사실이다. 또 21세기는 물의 전쟁시대라 말한다. 지금부터 깨끗한 물을 마음놓고 마실 수 있도록 자연환경을 살려나가는 일에 동참해 나가자. 자연은 인간을 살리고 인간은 자연환경을 살린다는 말처럼 우리가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자연을 필요로하고 병든 자연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선조”들은 무얼 했길래 마시는 물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는냐는 원망을 듣지 않도록 자연보전에 앞장서 나가자.
1997.11.25
조회수 : 1013
동시 - 가을비
김수정/양천초등학교 3년가랑비가 부끄러워조용히 내려온다.친구가 없던 은행잎도 가랑비와친구하려고나무에서우루루 우루루가랑비 따라내려오네!
1997.11.25
조회수 : 929
독 후 감 - <목민심서>를 읽고
북구청은 지난 10월 독서의 달을 맞아 독서의 저변확대를 위해 관내 주민을 대상으로 구민독서경진대회를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총 15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으며 최우수 1편, 우수 2편 장려 4편이 선정해 11월 구 정례조례시 시상했다. (입선작 1편을 소개한다.) 청백리 그대 다산이여 ! <목민심서>를 읽고“ 시대를 초월하여 실학을 널리 알려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주었던 선구자적인 인물됨을 본받아야” 한 순 정 (구포3동)약용은 연천 군수, 화순 현감을 지낸 청백리 정재순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 윤씨를 여의고 새어머니를 모셨는데, 약용과는 나이 차이가 그리 많지 않은 터였지만 효로 섬겼다. 가난한 관리의 집에 시집온 새어머니도 약용을 은혜로 보살폈고 훗날까지 좋은 벗이되어 주었다. 이처럼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함으로써 새어머니의 마음을 감동시킨 좋은 교훈은 낳은정 기른정 가리기 전에 우리가 본받아야할 대목이었다. 새삼스레 아버님과 어머님, 아버지와 엄마가 그리워졌다. ‘그래, 효도하리라’고. 약용의 창동 집에서의 일이다.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목수 천만호는 겨울이면 일이 없어 집안 살림이 아주 어려웠다. 이를 본 약용은 ‘목수일이 없는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하고 궁리끝에 솜타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목화솜이 생활 필수품이면 당시에 솜타는 일은 손질이 많아야 하고 시간도 많이 드는 것이어서 약용의 발명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천만호는 기계를 만들어 팔아서 살림이 넉넉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적은 힘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학문을 배우는 것으로 다하지 않고 실생활에 응용함으로써 진정한 학문의 가치를 발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시대를 초월하여 실학을 널리 알려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주었던 선구자적인 인물됨을 본받아야겠다.약용은 벼슬길에 올라 많은 학문적인 의견을 나누었고 좋은 책을 지어올려 정조임금을 기쁘게 해주었다. 선왕 영조가 탕평책을 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조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위해 중용 정책을 도모하던 어려운 때에, 암행어사의 명을 수행하여 사색당파에 밀려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탐관오리들을 벌하여 가뜩이나 흉흉해져있던 민심을 잘 수습하여 임금의 총애를 받는 좋은 신하가 되었다. 또한 곡산 부사 시절에도 조세 제도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잘 보살펴서 널리 이름난 목민관이 되었다. 여기에서 나라에는 충성을 다하고 맡은 임무에 소홀함이 없는 관리의 자세에서 나는 많은 교훈을 얻었다. 이시대 관리들이 본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대목을 읽으며 모든 아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약용은 일찌기 실학을 익혔고, 이벽에게서 서교에 대해 듣고 천주실의를 보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당파 세력들의 묘략으로 전라도 강진현으로 귀양을가게 되었다. 이 곳에서 오랜 유배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때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많은 책도 저술하게 되었다. 이무렵 형 약전도 우이도에 유배되어 있었으나 죄인의 몸으로 형제간의 상봉이 어려웠다. 두사람은 많은 서신을 주고 받으며 형제애를 다졌다. 이 대목에서 약용은 형님께 서신으로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형 또한 약용에게 많은 격려를 보냄으로써 가족간의 사랑, 형제간의 믿음을 우리는 두고두고 본받아야할 것이리라. 훗날 이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유배에서 해금이 되었다.훌륭한 사람은 왜 나쁜 무리들에게 모함을 당해야만 하는지 쓴맛이었다. 누구에게도 적을 만들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에 불평이 없이 호연지기를 가르쳐 준 약용이었다. 이 책에서 제 일을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나도 주어진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199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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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22 - 만덕동
만덕동(萬德洞) 지명의 유래 백 이 성 (낙동향토문화원 원장)만덕사와 만덕고개에 얽힌 지명만덕동(萬德洞)이라는 지명(地名)은 어디에서 유래(由來)한 것일까?먼저 그 어원을 만덕사(萬德寺)라는 고려시대에 세워졌던 절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까지 알려진 기록에 의한 만덕사의 내력은 오직 하나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 이른바 석기 왕자의 왕위추대음모사건과 관련된 기록 속에 나오고 있다. 이 기록들에 나오는 충혜왕(忠蕙王)의 서자(庶子) 석기(釋器)가 만덕사에 와 있었다는 이야기는 공민왕 5년에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던 음모사건과 관련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문헌(文獻)에 석기(釋器)가 유폐(幽閉)되었던 절이 만덕사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 절의 내력과 위치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만덕동의 큰 절터 유적과 유물들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려사에 나오는 석기 추대 음모사건과 관련된 만덕사가 만덕동에 있는 절터라는 데에 귀착하게 된다. 그래서 만덕동의 명칭은 현재의 만덕 제1터널 입구 좌측 산쪽에 있는 사기(寺基-절터) 마을에 있는 만덕사(萬德寺)에 그 연원(淵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곳 만덕동 뒷산에 임진왜란 때 만명(萬名)의 피난민이 와서 피신했다고 만덕동이라고 했다는 설(說)도 있는데 그것은 근거가 확실치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고갯길에는 도둑들이 들끓어 여기를 오르내리던 장꾼들의 물품을 털어갔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넘어야 했기 때문에 ‘만등고개’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그 이름이 만덕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이곳 만덕사에 많은 승병(僧兵)이 운집(雲集)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만덕이란 말은 결국 만덕사와 관련하여 생긴 이름으로 넓은 절터에 만명(萬名)의 대덕(大德-스님)이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는 것이다.만덕사 절터와 관련된 지명들‘만덕사 옛 절터’란 뜻의 사기(寺基)마을은 현재 만덕 제1터널 입구 좌측에 있는 마을을 이야기한다.이곳에는 만덕사 금당지(金堂址)가 폐사된지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금당지의 입구에서 바라보면 장방형의 큰 바위들로 쌓아올린 대형 석축은 이 절터가 고려시대의 국찰에 버금가는 곳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이 지역의 지명들을 살펴보면 모두 만덕사와 연관된 것이 많다. 먼저 만덕사의 안산(案山)은 비룡산(飛龍山)이다.용이 날아오르는 형상을 한 비룡산은 풍수지리상 명산이다. 그리고 만덕사가 명당자리임을 나타내주는 좌청룡우백호의 풍수에 맞추어 만덕사의 서쪽 강변쪽을 가로 막고 있는 산이 용을산(龍乙山)이다.옛날 상계봉 골짜기에서 용을산 너머로 흘러내리던 물을 용의 등허리를 잘라 만덕사쪽으로 흐르게 했다는 용호골의 전설은 용을산의 주름을 자른 후 절쪽으로 흘러내렸다는 용을그렁(도랑)의 지형을 살펴보면 신비함을 느끼게한다.만덕사의 위쪽 개울가에는 차밭골이 있는데 만덕사에 선승(禪僧)들이 주석하면서 마시던 선다(禪茶)의 내력을 증명해주는 지명이다.이곳 차밭골에는 지금도 야생 차나무가 군생(群生)하고 있는데 꽃이 좋고 열매가 둥글둥글하게 열리고 있다.계곡 위쪽의 소나무 밭에는 떡매바우라는 홈이파인 바위가 있다. 이는 만덕사에서 수조(水漕)로 쓰기위해 제작하다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돌인데 만덕사람들이 평평하게 파인 돌 모양을 보고 옛날 만덕사에서 떡매를 치던 돌이라고 ‘떡매바우, 덕전걸바우, 떡구시바우’라는 이름을 붙였다.절터였던 곳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논을 갈기위하여 논빼미 옆에 만덕사 3층 석탑 2기(基)가 허물어진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한곳에 모두어 놓았다고 이곳을 탑빼미라고 불렀다.그리고 현재의 만덕터널 앞 도로 아래쪽에 당간지주가 있는 곳을 개따껄이라고 부른다. 동네아이들이 당간지주 옆에 있던 동네 당산의 포구나무 있는 곳을 갈때는 개따껄 간다고 했는대 개따껄이란 이름은 당간지주에 사찰을 상징하여 내걸던 깃대가 있는 곳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만덕사와 연관된 지명은 이곳 사기 마을 말고도 만덕지역의 곳곳에 남아있다.동래로 넘어가던 만덕고개가 바로 만덕사에서 연유한 지명이요, 옛날 만덕에서 초읍으로 넘어가던 고개를 부태고개, 불태령(佛態嶺)이라고 하는데 이 고개의 이름 속에 부처님의 모습이란 뜻이 담긴 것을 봐도 만덕사와 연관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실제 만덕사 금당지에서 정면으로 쳐다보면 안산(案山)인 비룡산이 보이고 그 비룡산 너머 정면으로 불태령이 쳐다보인다.조선시대 양산군지, 동래부지의 기록에 보면 만덕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덕천(德川) 냇물을 만덕계수(萬德溪水)라고 한 것을 보아도 만덕이란 지명이 오랫동안 전해오는 것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이 만덕계수가 흘러내리다가 현재의 신만덕 중소기업청이 있는 곳의 위쪽 100여 미터 지점에 큰 웅덩이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웅덩이의 이름이 중시골이고 이곳에 있던 큰 바위가 중시골 바우였다.글 뜻대로 만덕사 스님들이 목욕하던 곳이라서 중시골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이 만덕 계곡물이 흘러 내리는 남산정 마을의 북쪽산에는 기와골이란 골짜기가 있다.이 골짜기의 이름을 보면 고려시대 엄청난 규모의 큰 사찰이었던 만덕사의 기와를 이곳에서 생산해서 보급한 곳으로 추정된다.절터 앞에 길게 벋어내린 능선을 길다고 진등(長丘)이라고 하는데 사기마을과 상리마을의 중간지점인 이 계곡평야에 끝이 갈린 원추형(圓錐形)의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북채로 북을 친다는 북바위이며 이 계곡을 북설이라고 한다. 이 북바위의 전설도 만덕사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만덕사는 사찰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절에서 쌀을 씻는 뜨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 낙동강까지 하얗게 떠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이처럼 만덕사는 고려시대의 절터로서 만덕동 일대의 곳곳에 유적과 전설이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고장 전설만덕고개와 빼빼영감동래 남문(南門)밖에 동래와 구포장을 번갈아 다니면서 삿자리 장사를 하며 생계(生計)를 이어가던 홀아비가 살았다.성(姓)도 이름도 없이 빼빼영감으로 통하는 이 삿자리 장사는 어찌나 여위고 피골(彼骨)이 상접(相接)하였던지 성내(城內)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이 영감이 하루는 구포장에 갔다가 여러 장꾼들과 함께 험한 만덕고개를 넘게 되었다.이 고개는 구포에서 동래로 넘어가는 험한 산길이다. 그리고 이곳은 옛날부터 동래부(東萊府) 관아에선 최대의 도적들 소굴이었으니, 지금 양정동(楊亭洞)의 마비현(馬飛峴=모너머고개) 화적떼도 이 무리에 비하면 문제가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만덕고개를 ‘만등고개’로도 불렀는데 만(萬)사람이 무리를 지어 올라가야 도적을 피할 수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이 만덕 고갯길을 빼빼영감과 장꾼들이 구포장을 보고 동래로 돌아가면서 고개마루에 있는 주막에 앉아 잠시쉬게 되었다.이때 별안간 10여명의 도적떼가 뛰어들면서 “꼼짝마라! 움직이면 죽인다”라고 사나운 얼굴을 지으며 장꾼들을 한사람씩 묶어버렸다. 그리고 두목이 나서서 물건을 판 돈과 가진것들은 모조리 내어 놓으라고 위협했다. 이때 빼빼영감이 감연히 앞으로 나서서 도적을 향하여,“여기있는 장꾼들은 이 험한 고개를 나돌아 다니면서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아무리 도둑질을 하고 산다고 하지만 사람을 보고 물건을 털어야 될 것이 아니옵니까?”라고 애걸(哀乞)하는 어조로 말했다.그러나 도적들은 이 빼빼영감에게 달려들면서,“이놈! 묶인 녀석이 무슨 잔소리냐”하면서 뭇매를 때리고 발길로 차더니 땅바닥 위에 쓰러 뜨렸다. 영감은 봉변을 당하고도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벌떡 일어서서, “이놈들! 이 끈을 풀어주지 못하겠느냐”고 외치면서 눈에는 살기(殺氣)가 등등하였다. 도적들의 시선이 빼빼영감에게 쏠렸을 땐 벌써 몸뚱이에 묶인 밧줄은 모두 끊어진 뒤였다. 이놈을 때리고 저놈을 밀어 넘어뜨리는 그 솜씨는 비호같이 날쌨다. 이 비상한 완력에 감당할 수 없었던 도적들은 모두 도망쳐 달아났다. 그러자 그는 묶인 장꾼들을 한 사람씩 모두 풀어주었다.이때 힘을 얻은 장꾼들은 다쳐서 못달아난 도적들을 잡아 동래로 가자고 했으나 그는 “우리들에게 소득이 없는 일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그 자들은 이젠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고 하면서 술과 안주를 있는대로 다 가져오라고 주모(酒母)에게 청했다.“여러분! 이 술은 모두 제가 사겠습니다. 마음껏 잡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마을에 내려가거든 오늘 일어 난 이야기만은 절대하지 말도록 거듭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했다.술 대접까지 잘 받은 장꾼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를 내려와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흘 후 장꾼의 한 사람이 빼빼영감의 집을 찾아드니 그 집은 텅텅 빈집이 되어 있었다.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자 나라에서는 빼빼영감이 비상한 힘을 가진 장사인 것을 알고 찾았으나 그 행적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199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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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 주민 참여 확산
'21세기 북구는 녹색도시'가을의 끝 만추다. 자연은 갖가지 빛깔로 넉넉함을 잉태하고 있다. 그 몸짓은 아스라한 고향의 향수다. 길섶에 흐트러진 억새꽃이며, 개암이며 도토리도 만나보리라. 갈색 물결의 숲은 바라만 봐도 어쩐지 정이 간다. 도시 냄새가 조금 베이면 어떠랴!느긋해 질 수 있는 마음만 가지면 되는 것을, 노을 지는 숲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벤치에 앉아 마음에 드는 시 한줄 읊조려 보자. 가끔 쓸쓸한 허무를 본다. 단풍이 묻은 황혼은 숭고하리 만큼 장엄하고 아름답다. 건조한 회색 도시의 언저리에서우리 인생의 끝 맺음도 수수한 풀꽃으로 키우다 가면 좋으련만 …■숲의 도시 북구가꾸기 운동은 주민 여러분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참여하실 분은 기념식수 접수창구에 신청하시면 됩니다.「오는 2001년까지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북구청이 사상 유례없이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은 최근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로 인해 숲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또 얼마전 영국,독일, 미국등지의 대도시에서도 도심의 콘크리트 건물에서 발산되는 열을 흡수하고 대기의 역전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외없이 거대한 숲을 조성하고 있다는 언론보도에 비추어 볼 때 「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은 환경개선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숲은 도시의 오염된 공기정화는 물론 주민정서 순화와 토사유출에 의한 재난예방,상수원의 저장공급, 목재생산등 많은 혜택을 제공해 줄뿐 아니라 생태적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숲을 조성하는 것은 곧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원을 마련하는 셈이다. 이에따라 북구청은 주거중심의 지역특성을 살려 청소년에게는 꿈과 낭만을 구민에게는 쾌적함과 안락함을 제공하기 위해 5개년 계획으로 2001년까지 10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종합운영반 △홍보지원반 △녹화사업반 △주민대책반 등 4개반을 구성, 7대 과제별로 시범 사업장을 선정해 효과를 파급시켜나가고 구민 모두가 참여하는 시책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기념식수를 할 수 있도록 구청과 각동에 상담창구를 설치해 묘목 알선과 기술지원을 다하고 있다. 이밖에 숲의도시 북구가꾸기의 범구민 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권 익 구청장이 직접 각 동별 시범지를 순회하는 시범식수를 실시했다. 이번 행사에는 각 동장을 비롯한 구의원 및 자생단체장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석하였는데 마을마다 1개소씩 지정된 시범식수지에서 식수희망자와 함께 나무를 심는 것으로 녹화사업의 첫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됐다. 이젠 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은 30만 구민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으로 구민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이번달 “숲의 도시북구가꾸기" 기념식수에는 총 95명이 참여해 110그루를 심었습니다. 기념식수에 참여하신 모든분께 감사드리며 구민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합니다. ● 구민 기념식수 접수 창구 운영개인·가족단위의 생일, 결혼, 회갑, 돌이나 직장단체 단위의 창립일 등 각종 기념일을 맞아 1그루 나무를 심는 사업이다. 식수 희망자는 상담창구에 식수예정일 15일전까지 신청하면 되는데 식수수종이나 대상지는 본인의 희망지를 우선으로 하고 없을 경우 접수 창구에서 알선해 준다. 나무값은 수종 및 크기에 따라 다르며 대체로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다. 이밖에 식수일에는 수종과 일자, 그리고 식수자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무료로 제공한다.<접수창구>총 무 과 (☎309-8251) 지역경제과 (☎309-8351) 각동사무소◎ 금곡동 “벚꽃 도시로 조성"금곡동(동장 박갑술)은 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과 연계해 오는 2001년까지 마을 전체를 벚꽃단지로 조성키로 했다. 우선 1차적으로 고사목 위주의 가로수 수종을 벚꽃으로 교체하고 아파트 진입로변과 이면도로, 어린이소공원등에도 단계적으로 벚꽃을 식재해 마을 전체를 아름다운 벚꽃단지로 가꾸어 나갈 방침이다. 특히 지난 10월 28일에는 금곡동 벚꽃조성추진위원회(위원장 송영근)가 지역주민 46명으로 발족돼 앞으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아울러 금곡동은 추진위원회 중심으로 '1세대 1벚나무 심기'를 전개해 전 동민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애향심과 자긍심을 드높여 나갈 것이다.◎ 구포3동 동정자문위원 전원 기념식수 발벗고 나서 구포3동 동정자문위원회(위원장 신민웅) 위원 25명은 ‘숲의도시 북구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념식수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20일 구포3동 체육공원내에서 권 익 구청장 및 조일호·이종택 구의원과 함께 전위원들은 대대적인 기념식수를 전개해 벚꽃나무 27본을 심고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진 표찰을 달아 참여의 의미를 돼새겼다. 또 금곡동 신금초등학교 운영위원회(위원장 김근수)에서도 11월중으로 학교내 운동장에 벚나무 20∼30 본을 심기로 하는 등 기념식수운동에 동참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이제 숲의도시 북구가꾸기는 주민 모두의 참여운동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199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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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주차질서 계도 봉사회 선진교통문화 정착에 앞장
북구 주차질서계도봉사회(회장 박찬규, 구의회운영위원장)는 교통질서 자율봉사 단체로 지난 10월8일 회원 155명으로 구성 발족되었다. 주차질서 확립을 위한 계도홍보를 실시하여 주·정차질서 의식을 고취시키고 주민불편을 자율적으로 해소함으로써 선진교통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불법주차로 인한 교통민원이 급증하는 현실을 알고 담당책임구역을 정해 불법 주정차 금지계도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어 도로기능 회복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또 지난 11월 6일에는 덕천로터리 일대에서 회원 49명과 공무원등 관계자 1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주·정차질서계도 활동과 무지개운동 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한 가두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도 했다.아울러 오는 12월에는 만덕로터리에서 주·정차질서 확립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여 주민참여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며 전 회원이 사명감을 갖고 봉사활동을 전개해 선진교통문화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
199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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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1인 1기, 기술교육을 수료하고
강 옥 희 (화명동 벽산강변타운 109동 501호) 우연한 기회에 북구청에서 주최한 ‘북구여성 한가지 기술교육’ 에 참석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이봉자 선생님을 만나 10월 6일부터 24일까지 70여명의 주부들과 꽃꽂이와 선물포장법을 배우게 되었다. 첫날 수업인 10월 7일 꽃바구니에 오아시스를 놓고 원장선생님의 시범을 보며 한송이 한송이 꽃들을 가위로 다듬어서 장식해 놓으니 정말 예쁘고 근사한 꽃바구니가 탄생되었다. 꽃바구니에 행복을 가득담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여자로서 한가지 기술을 배운다는 기쁨이 솟구쳤다. 꽃바구니에 쏠리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집으로 돌아와 썰렁한 거실에 꽃바구니를 놓는 순간 두딸아이의 함성 “와, 예쁘다 이거 정말 엄마가 꽃꽂이 한거 맞나?”하며 좋아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의 흐뭇한 미소에 덩달아 즐거웠다. 평소에는 시장가서도 꽃파는 가게에 눈길 한번주지 않던 내가 한다발 듬뿍사서 들고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되고 서먹해하던 수강생들과도 차츰 친해져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완성된 꽃바구니를 두고 서로 평가도 해보고 잘못된 부분은 자상한 언니처럼 세심하게 가르쳐 주시는 원장 선생님 덕분에 가을 단풍놀이 가고 싶은 유혹도 잊고 열심히 배웠다. 가슴에 다는 ‘콧사지’를 배우는 날은 내가만든 꽃장식을 가슴에 달고 외출할 생각에 들떠기도 했다. 상자에 포장지를 대고 예쁘게 리본으로 묶는 상자 포장법도 간단하지만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수업이어서 유익했다. 마지막 수업인 ‘결혼식 부케 만드는날’ 결혼식 장면을 떠 올리며 하나하나 정성들여 테이프를 감아서 예쁜 리본으로 묶어 들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수료증을 받던날! 너무 아쉬워서 몇 달 더 해달라는 투정도 부렸다. 주부로서 모처럼의 외출이 알차고 보람된 시간들로 채워졌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주최하신 북구청 관계자 여러분과 수고하신 원장선생님 그리고 수강생 모두의 가정에 꽃 한바구니 가득담아 행복을 기원합니다.
199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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