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마당
총 14217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 1293/1422 페이지 )
- 온정을 기다립니다. 암으로 투병중인 이대일씨(태경아파트 거주)를 돕기위한 성금을 접수하고 있습니다.-접수처: 구포3동 태경아파트 문윤자(반장. 201호) 1999.02.25 조회수 : 679
- 우리동네 소식 - 구덕 라이온스 클럽 불우이웃 도와 구덕 라이온스 클럽(회장 김상기)에서는 설, 추석에는 불우이웃돕기를 정기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특히 구포2동 실직자 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금년 설에도 소년소녀가장인 장영진외 9명에게 50만원 상당을 전달하였다.- 배연주 명예기자 - 1999.02.25 조회수 : 711
- 우리동네 소식 - 정월대보름 윷놀이 대회 개최 덕천1동에서는 주민간 친선을 도모하고 산불 발생시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오는 3월 2일 오전 10시 동사무소 3층 회의실에서 동 관련 10개 단체가 모인 가운데 정월대보름 윷놀이 대회를 개최한다. 1999.02.25 조회수 : 805
- 우리동네 소식 - 서예에 관심이 있는 분 모집합니다. 구포3동 백양서당(훈장 나건옥, 회장 서혜경)에서 새봄을 맞아 서예에 관심이 있는 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모집제한은 없으며 강습내용은 한글, 한문, 묵화 등입니다.·문의: 회장 335-5125 총무 331-0707- 정윤재 명예기자 - 1999.02.25 조회수 : 688
- 우리동네 소식 - 만덕2·3동 새마을금고, 다양한 복지사업 시행 만덕2·3동 새마을금고에서는 금고수입을 지역주민들에게 환원하기 위해 금고 복지관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복지관 문화교실 강좌에는 단전호흡이 초·중·고급으로 나뉘어 매주 월, 수, 금 시행되며 노래교실은 매주 화요일, 종이접기 교실은 매주 목요일에 실시, 강좌기간은 3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자치회비 월 1만원이다. 또 매주 금요일 실시되는 민요장구교실은 4월 2일부터 6월 25일까지 월 1만5천원이며, 문화강좌 접수기간은 2월 18일부터 계속된다. 한편 2월 27일 10시 30분에는 복지관 노래교실 특강이 무료로 실시되며, 이밖에도 다양한 복지사업이 많이 시행되고 있다.·문의: 만덕2·3동 새마을금고 ☎ 343-2361 1999.02.25 조회수 : 1044
- 우리동네 소식 - 청룡사 약수터 및 등산로 정비 만덕1동에서는 주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하여 미리내 유치원 뒤쪽에서 약수터까지 약 1.5km 구간 등산로를 정비하였다. 솎아낸 통나무를 일부 활용하여 계단을 만들어 주민들의 안전에 도움이 되도록 정비하였고, 약수터 윗쪽 청룡사에는 윗몸 일으키기, 허리돌리기 등 각종 운동기구 10점과 편의시설 등을 보강하였다. 한편, 만덕1동 통장협의회 회장이며 삼성화재 만덕1동 대리점의 이희식씨는 베트민턴 체육공원과 약수터에 벽시계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김은숙 명예기자 - 1999.02.25 조회수 : 755
- 우리동네 소식 - 구포전화국 내 시설물 개방 한국통신 구포전화국(국장: 김삼식)은 전화국내 시설물인 대회의실(150석)과 테니스장(1면) 등을 고객맞이 차원에서 저렴하게(청소비 정도) 사용할 수 있도록 주민을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 박용수 명예기자 - 1999.02.25 조회수 : 761
- 우리 농수산물과 수입농수산물의 비교전시 우리구청은 우리 농수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자들의 식별능력을 드높이기 위해 국산과 수입 농수산물 비교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농협 및 대단지아파트 상가 관리사무소, 각 동사무소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사진판넬 35품목, 현물 35품목과 전시 물품의 성격상 부패의 우려가 있어 오랜시간 전시할 수 없는 품목에 대해서는 컴퓨터 영상기 1대를 비치,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구청은 금곡주공4단지 2층 복지관(☎ 362-0111)에서 오는 3월 5일까지, 태평양그린아파트 상가 1층(☎ 343-6081)에서는 오는 3월 8일부터 18일까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단계별로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실시되었던 비교 전시회가 좋은 성과를 얻은데 이어 이번 전시회도 일반주민, 학생 등 참관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문의 : 지역경제과 ☎ 309-4481~3 1999.02.25 조회수 : 847
- 부동산 정보 지난 1월 한달 동안 우리구 부동산 거래동향을 살펴보면 예년 같은 달에 비해 400%이상의 증가를 보이고 있으나, 기존주택 및 토지의 거래량은 예년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현상은 경남아파트 준공에 따른 입주(370건)와 만덕 벽산라인 아파트(420건) 및 구포동 삼정그린아파트(460건), 총 1,250세대 준공에 따른 것이다.반면 그린밸트 해제 보도와 관련한 우리구의 거래량을 살펴보면 ‘98년 11월(15건)과 12월(10건)에 일부 거래가 있었으나, ‘99년 1월에는 5건으로 감소현상이 나타났다. 그린밸트 해제가 7월이후로 결정된다는 보도에 따라 그린밸트 거래의 뚜렷한 증가는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한편 구청 지적과에서 분석한 우리구 부동산 경기 전망에 따르면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99년 하반기 이후 기존 부동산 거래가 점진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개발제한구역(그린밸트)과 관련한 거래동향은 7월이후 그 추이를 살핀 후 거래량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료제공/북구청 지적과 ☎ 309-4751 1999.02.25 조회수 : 3326
-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33 - 충신과 효자·열녀비의 내력 백 이 성 북구 낙동문화원 원장 우리 고장에 전해 내려오는 충신과 효자·열녀비 유적은 만덕동에 있는 김기장군 묘갈명과 금곡동에 있는 효자 천승호와 열녀이씨 정려비가 있다.그중에서 만덕동 만덕사의 풍수지리상 우백호인 용을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김기장군의 묘소는 소나무 숲속에 가려져 있어 주민들이 쉽게 찾을수 없는 실정이다.금곡동에 있는 효자 천승호와 열녀이씨 정려비는 원래 금곡율리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져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금곡중학교앞 소공원으로 옮겨 세워놓고 있다. 임진왜란 공신 김기(金琦)장군 묘비문화재관리국에서 발행한 문화유적총람에 의하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동래(東萊)출신의 의병(義兵)으로 죽은 뒤에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으로 추증(追贈)된 김기(金琦)공의 묘가 만덕동에 있고 묘비(墓碑)에는 그 공적이 실려있고 묘비(墓碑)의 규모는 높이 1.33m, 폭 34cm, 두께 11cm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래(東萊)지방의 의병활동에 관해서는 충렬사지(忠烈祠志) 부록 2 별전공신록(別典功臣錄)에 그 대강이 기록되어 있으며 여기에 포공(褒功)될 24공신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의 한사람이 판관(判官) 김기(金琦)장군이다. 김기(金琦)장군에 관한 기록을 보면 ‘壬辰變亂以後 本府人竝爲潰散時 終不背官’이라고 되어있으니 임진란(壬辰亂)이후 본부인(本府人=東萊府사람)이 모두 전투에 져서 뿔뿔이 흩어질 때 끝내 관(官)에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기장군 묘소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公生得忠義根天 英邁絶人 當壬亂 人皆離散 公以判官 終不背官 與倡義功臣二十四人 竝力討賊公亦同功之一也 自朝家旌寶褒 贈繕工監副正加 贈禦侮將軍 訓鍊院僉正 聖朝崇報至矣 及歿萬德九岩子坐原 配延安李氏麗明女合塋 (後略)공의 휘(諱)는 기(琦)이고 자(字)는 화경(和卿)이며 관(貫)은 광주(廣州)이다. (중략)공은 나면서 충의(忠義)함이 하늘에서 뿌리 박은 듯 하였으며 영민(英敏)하고 비범함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다. 임난(壬亂)을 당하여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으나 공은 판관(判官)으로서 끝내 직분을 버리지 아니하고 창의공신(倡義功臣) 24인과 더불어 힘을 모아 적을 토벌하셨으니 공 역시 함께 공(功)을 세움이 하나이다. 조정에서 공적을 표창하여 선공감부정가(繕工監副正加)의 벼슬과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의 벼슬을 내리셨으니 성조(聖朝)의 큰 보답이 지극함이라. 죽음에 미쳐 만덕(萬德) 구암(九岩) 자좌원(子坐原)에 장사지내고 부인 연안이씨(延安李氏) 여명(麗明)의 딸과 합장하였다.(후략) 효자 천승호(千乘昊)와 열녀 이씨(李氏) 효열(孝烈) 이야기효자 천승호와 열녀 이씨의 효행은 1872년 나라에서 교지를 내려 금곡동에 정려비를 세운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서 양산군 유림들이 군수에게 올린 추천서에 잘 나타나 있다.효자 천승호는 선비 집안의 전통은 이어받아 시례(詩禮)의 풍(風)과 효도를 배우지 않고도 글을 알았으며, 그 어머니가 일찌기 풍담(風痰)으로 여러 달 병에 누웠는데, 입은 옷에 띠를 풀지않고 자리는 곁을 떠나지 않으며 이리 저리 약을 물었다. 의원의 말이 “능구렁이(花蛇)가 가장 좋은데, 때가 겨울이니, 어디서 얻겠는가!”승호가 하늘을 부르며 물어 널리 구하니 끝내 얼음과 눈 쌓인 산에서 얻어 어머니 병이 즉시 나았다.효자 천승호는 산적들도 교화시켜그 후에 어머니가 학질을 앓아 좋은 음식을 구할 길이 없어 송아지를 시장에 팔아 받은 돈 10꿰미를 가지고 저녁에 돌아오다가 산골에서 갑자기 산적(山賊) 두 세명이 나타나 칼을 휘둘러 돈을 뺏으니, 승호가 병든 어머니 봉양할 돈이라고 지성으로 울며 간청하니 말씨가 사람을 감동시켰다. 적도들이,“당신이 효자 천승호인가?””성명은 맞으나 효자는 아닙니다.”“효자의 이름을 일찌기 귀 달갑게 들었소. 우리들이 비록 흉년으로 곤란하나 어찌 감히 효자의 돈을 뺏아 모친 봉양을 못하게 하리까?” 하며 백배사죄하며 가버렸다.대개 성효(誠孝)가 동물을 감동시켜 능구렁이가 저절로 나왔고, 사람을 감동시켜 흉도(凶徒) 산적들이 저절로 교화(敎化)된 것이다.열녀 이씨의 행적효자 천승호 23세에 비로소 결혼하여 능히 부부의 도리를 다하여 또한 부부유별(夫婦有別)을 다하였다.그 아내 경주 이씨는 본래 전통있는 가문의 딸로 천성이 순수하여 바탕과 행실이 정숙하며 이미 어진 부모의 훈계를 듣고 또 남편의 법도를 따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물 긷고 방아 찧고 길쌈하기 30여년에 혈기(血氣)가 이미 쇠약해도 절차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부지런 하였고 방이 차고 더운 문안까지 밤이나 낮이나 게으르지 않았으니 이것이 50살에도 부모를 사모하는 (五十而慕父母者) 사람인 것이다.이웃 여자들이 감화되고 촌 아낙네들이 사모하고 본받아 시모 섬기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이씨(李氏)를 일컬었으니, 만약 출천지효(出天之孝)가 아니면 그 사람을 감동 시키는 깊이가 어찌 이와 같겠는가? 정인년 4월에 그 남편 천승호가 문득 병에 걸려 점점 위독하게 되니 이씨가 백방으로 구호하다가 한결같은 정성으로 재계목욕하고 매일 밤 하늘에 빌어 자기 몸을 대신하기 원하였다.그 남편이 운명하니 슬픔을 절제하여 곡성을 그치고 시어머니를 위안하여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있는 것이니, 애통한다고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하며, 염습범절을 모두 남에게 맡기고 오직 시모 공양을 일로 삼으니 그 시모가 속병이 들었으나 겉으로는 편안한 체 하는 것을 알고 음식을 권하면 마시지 않고도 “마셨습니다.” 먹지 않고서도 “먹었습니다.”고 하였다.성복(成服)하는 날, 노비(奴婢)들이 가서 그 시모에게 아뢰니, 비로소 여러 날 동안 곡기(穀氣)를 끊은 줄 알고 손수 음식을 억지로 권하니 물 한 숟가락을 마시고는 피를 몇되나 토하니, 이것은 진실로 정(情)은 감출 수 있으나 피는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이튿날, 아이들을 불러 이별하는 말이 “너희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는 날, 내가 어찌 즉시 따라 떠나지 않으려했겠는가! 다만 할머니가 방에 계시기에 감히 거듭 마음의 상처를 드릴 수 없어 참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내 뜻은 이미 그때에 결정했었다. 지금은 네 아버지 상복을 입었고 할머님 마음도 조금 너그러워졌으며 또 봉양할 며느리가 있으니 내가 죽더라도 좋은 음식 대접은 그치지 않으리라. 너희들은 할머니가 계시고 나는 지하의 남편이 있으니, 살아 계신 할머니를 섬기고 죽은 남편을 따르는 것은 지금부터 길이 다르니라. 너희들은 너무 한탄하지 말거라.” 하시며, 또 양자로 간 아들 부부를 불러 말하기를, “내 죽은 뒤에 어린 동생들과 여동생들을 네가 거두어 길러 염려가 되지 않게 하라. 사람의 모든 행실이 어버이 섬김이 으뜸이요, 가정 다스리기에 완성되니 너는 모름지기 힘쓰고 힘써 집안 명성을 떨어뜨리지 말거라.” 또 말하기를, “부부는 무덤까지 같이 간다는 옛말이 있느니라. 이것이 내 지하의 소원이다.” 하며, 말을 마치고 입을 닫으며 떠나니 그 곡기를 끊은 처음과 끝날을 계산하면 무릇 7일간이었다.관내 유림들이 효자·열녀 부부로 추천그 남편은 어질고도 효성스러우며 그 아내는 효도와 정렬이 겸비했으니 감영과 고을에서 미행을 포창하는 일이 거듭되지 않음이 아니나, 조정에서 효열(孝烈)을 드러내어 밝히는 혜택(정려각)은 아직 지금까지 받지 못했으므로, 도내(道內) 선비들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의논한 끝에 상감의 행차가 왕릉을 뵈오러 가시는 때에 사유를 갖추어 말씀을 올렸더니, “도(道)에 조사토록 하겠노라”는 하교(下敎)가 있었기에, 도대표 유자(道代表 儒者)들이 뜻을 모아 이처럼 동의했고 본읍 사림이 침묵할 수 없었다.이에 연명하여 우러러 하소연하기를 즉시 실제대로 감영에 보고하여 천승호의 지극한 효도를 포창하고, 그 처 이씨(李氏)의 높은 열행을 정려(旌閭) 내려 조정에서 권장하는 높은 은택으로 처분 해 달라는 글을 올려 나라에서 효자 열녀 정려(旌閭) 교지(敎旨)가 내려진 것이다.효자 천승호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열녀 이씨를 숙인(淑人)으로 추증하고 효자 열녀 정려비를 1872년(고종9년)에 세워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1999.02.25 조회수 : 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