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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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 2024-06-25 13:48:22
  • 문유진
  • 조회수 : 11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3>
구명동·구남동, 거북이와 연관된 지명 사용
 
구명동(龜明)
낙동강을 끼고 부산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구명은 구포역에서 철도건널목 넘어 구포시장과 구포초등학교 차도 주변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구명이라는 지명은 구포초등학교의 전신으로 1907년 개교한 사립구명학교에서 유래되었다.
구포초등학교에서 철도건널목까지 거리에는 1809년 대리천 제방을 쌓아준 양산군수 이유하 공덕비가 있었고, 옛구포읍사무소(현, 구포1동 행정복지센터 재건축 중)와 1918년 구포 인사들이 설립한 기로사(耆老社), 그리고 구포성당, 1970년대 성황을 자랑한 동영극장이 있는 거리다.
그리고 범방산 거북이 머리 끝자락에 최씨할매당과 천재당이 있어 구포 별신굿을 할 때 이 곳 당산에서 기원을 한 후 구포강변나루터와 장터에서 굿을 하였다고 전해온다.
당산(堂山) 관리는 기로사에서 해왔으나 현재는 관리자가 없는 실태이다.
 
구남동(龜南)
도시철도 2호선이 지나는 구남은 구포의 남쪽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곳에서 사상구 모라로 뻗어내리는 범방산이 있다.
이 산은 김해(강서구)쪽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강(江)을 향하여 엎드려 있는 모습과 거북이 형상의 바위가 산 중턱에 있어 거북산이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경부선 1차공사(1903년)로 구포역이 생기면서 인가(人家)가 생기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구포의 발전과 더불어 외래인들이 들어와 큰 동네를 이루었다.
1960년대까지는 새 동네라 하였으며, 야시고개를 경계로 사상구 모라동과 구분된다. 구포지역에는 중학교 이상의 학교가 없어 부산시내에 있는 학교로 유학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인 오명구의 주도로 1953년에 사립 구포중학교를 설립했다.
현재는 백양고, 구남중, 구포도서관, 부산북부교육청, 학생예술문화회관 등 교육시설이 있으며 권영관 씨가 부산무형문화재 불화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범방산은 구복포란(龜伏抱卵·거북이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형으로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과 무장애숲길, 그리고 낙동강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역 주민과 외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