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호

이동

시론 - 깊은 과거 반성부터 하자

  • 1998-01-22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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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정 규(국제신문 논설위원
소설가, 부산작가회의 회장)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지혜의 발휘는 기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소비재가 생산재가 되도록 하는 일”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새 20여일이 지났다. 게다가 IMF의 식민체제가 억누르고 있어 예년과는 다른 희망찬 새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새해가 되면 으레 과분하기까지 한 설계를 하고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믿어 온 것이 우리의 새해 맞이 습관이었다.
위정자나 지도층 인사들도 희망이 성취되는 해가 되리라는 덕담으로 가슴을 설레게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는 달랐다. 현임 대통령의 신년사는 그 소리마저 약하기 짝이 없었고 차기 대통령의 인내와 검약을 요청하는 소리만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그리고 그 무거움이 언제 덜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게된 것은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시작됐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아니 어떻게 보면 위정자의 실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국민의 잘못이 더 큰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주인이면서 주인노릇을 하지 못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IMF시대를 맞아 우리 모두는 분명한 주인으로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IMF가 우리에게 분명한 주인의식을 깨우쳐 준 셈이라고나 할까. 위정자에게만 나라 일을 맡겨두고 흥청망청했던 지난날에 대한 속죄와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도 주인으로서 제 할 일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위정자가 이 나라 경제를 되살려 다시 여유있는 생활을 되돌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착각이 되는 때다.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던져 되살리기에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나라 주인으로서 경제 살리기에 주체적 노력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 경제살리기에 동참하느라 장농속의 고이 간직했던 금부치들을 아낌없이 내놓는 국민들의 애틋한 애국심은 어떤 선진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일제식민지 시절 강권에 의해 금부치를 공출 당한 때와는 달리 새로 국정을 책임지게 된 차기 대통령의 호소를 받아들여 기층민과 중산층들이 살과 피같은 금부치를 기꺼이 내놓는 것은 바로 경제위기를 맞아 비로소 국민들이 주인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자각을 깊이 한 것으로 이해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주인으로서는 이런 정도의 내놓기와 참여로는 경제난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인식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주인에게는 무한 참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지혜의 발휘는 기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소비재가 생산재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은 물론 주부들과 아이들까지 생산원가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수돗물 1리터의 생산비가 얼마인지, 쌀 한되의 생산비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모든 소비자도 경영을 알아야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한병의 양주를 마시는데 외국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얼마인지, 모피코트 한벌을 입으려면 얼마나 많은 동물보호자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지를 알 때 비로소 우리의 생활양식이 달라질 것이 아닌가.
참으로 미안한 애기지만 우리 모두는 너무 무지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하자고 해왔지만 과학적인 것이 무엇인지 합리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충동성 즉흥성 그리고 과시욕으로 스스로 생활기반을 시나브로 무너뜨려 온 것이다.
이런 구습을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도약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우선 그런 과거부터 되돌아 보는 것이 주인된 도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