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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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 남는 반찬 가져가는 우리 학교 어때요

  • 1998-02-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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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 영 덕천2동(언양초등학교 교사)


하루에 수십톤씩
쏟아져 나오는 음식 쓰레기…
우리들에게 굳어진 음식문화는
정말 바꾸기 힘들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급식 당번들이 밥과 찬을 가지고 오는 것만 보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도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어서 한번씩 뒤돌아 보곤 한다. 항상 아이들이란 없을 때 사고를 잘 내는 법이니깐. 1시간여를 비우는 동안 식사나 제대로 했을까.
어디엔가 음식을 집어먹던 수저가 굴러다니지나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는데 책상위에 오징어 조림이 한 웅큼 정도 비닐팩에 예쁘게 싸여져 있고 밀감 몇개가 같이 있었다.
반장에게 물어보니 애들이 몇 봉지씩 싸 가지고 가고 남은 것을 선생님 몫이라고 챙겨 두었단다.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애들 앞에선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모범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다른 시간도 마찬가지이지만 점심 급식 시간은 아이들과의 전쟁이다. 단것과 군것질거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김치가 꼭 섞여있는 한국적인 식단의 급식을 다 먹이기 위해서는 신경전을 많이 벌여야만 한다. 짜장이니 탕수육, 피자가 나오면 사족을 못쓰고 허겁지겁 먹어대더니만 시락국, 된장국, 나물 종류가 나오면 떫은 감을 씹어 먹은 표정으로 변해버린다. 다소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밥과 반찬, 국물을 남김없이 먹도록 하는데 사실 애들에게 미안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까운 음식들이 쓰레기장에 그냥 버려 진다고 생각하니 억지로라도 먹일 수 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토속적인 음식에 입맛을 맞추지 않는다면 몇 십년이 흐른 뒤에 우리 음식은 발도 못붙일 것 같은 불안감도 많이 작용했으리라.
40명이 넘는 아이들의 양에 맞추어 교실에 찬거리를 들고와서 먹다보니 남을 경우도 있고 모자랄 경우도 많다.
어쩌면 꼭 맞게 먹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급식소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남는 밥은 말려서 강정을 만들고 그 외의 반찬은 여지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닐팩을 가져와서 남는 반찬을 조금씩 싸서 집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엄마께서도 일손을 들고 색다른 반찬을 먹을 수 있다며 좋아하셨다.
아이들도 점차 집으로 가져가는 수가 늘어났다.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지네들끼리 가져가고 싶은 것을 조금씩 챙긴다. 덕분에 우리반 찬통은 항상 빈바닥을 보이며 급식소로 되돌아 간다.
사실 처음에는 ‘까탈스럽게 별결 다 챙기는구나’라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을까.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특유의 뻔뻔스러움으로 그 시기를 당당하게 극복하고 지금은 잘도 챙겨간다.
하루에 수십톤씩 쏟아져 나오는 음식 쓰레기들이 각종 오물과 뒤범벅이 되어 매립지에 파묻혀 진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오늘 내일이 아니다. “아휴, 저걸 어쩌나. 아까운 음식들이 그냥 버려지네 쯧쯧......” 혀를 차지만 우리들에게 굳어진 음식 문화는 정말 바꾸기 힘들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모자란 듯 주는 것보다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듬뿍듬뿍 장만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한식 종류를 먹게 되면 많게는 수십 종류에서 십여 종류의 찬들이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데 이 모두를 다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음식점에서도 조금씩만 주자니 인색하다는 평을 들을 것 같고 손님이 자주 주문하면 번거로우니깐 처음부터 많이 제공하게 된다.
각자가 먹고 싶은 반찬과 분량만큼 셀프서비스 식으로 가져 간다면 귀찮더라도 아까운 음식을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일이 훨씬 줄 것이다.
아니면 남는 음식은 집으로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싸 갈수 있는 풍토가 우리 생활에 젖어든다면 음식 쓰레기 문제로 골치를 썩히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오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비닐팩에 음식을 담았다. “하나는 내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누가 가져...” 말도 채 끝나기 전에 아이들이 쪼르르 나와서 “저요, 저요”하며 달려든다. 나는 속으로 ‘녀석들, 공짜라고 좋아하기는’하면서 고사리 같은 손에 한 움큼씩 쥐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