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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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언 - 극기복례 (克己復禮)

  • 1998-10-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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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혁 표 부산대학교 교수

요즈음 항간에 회자(膾炙)되는 말중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와 「공무원이면 다 공무원인가 공무원다워야 공무원이지」가 있다. 여기에 「다워야지」란데 의미가 들어있다. 우선 사람답다고 할 때 지녀야 할 요건이 어떤 것일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人間」이다. 人은 ‘서로 도운다’는 상형문자이다. 혼자 있으면 넘어지니까, 뒷 등을 바치는 막대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울려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특성은 갖되 개인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은 하되, 남과 어울려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물며,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은 그 업무수행을 위해서도 남과 자주 접촉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무원 답다」 라고 할 때 우선, 인간으로서의 자질과 업무수행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기가 맡은 바의 역할과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업무수행 능력은 모두 잘 갖추어 있다는 전제하에 여기서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에 한정하여 말하기로 한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공무원인 자신이나 업무수행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어떤 사람이나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귀중한 존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자존감과 긍지를 갖고 일하는 사람은 그것에 걸맞게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혹시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까 염려스러움에서 언행을 신중히 하게 된다. 거만하다는 것, 불친절하다는 것과 긍지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인(聖人),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님 등은 누구와도 대화하고 그들과 어울렸으며, 거만했다던지 불친절했다는 기록이 없다. 「내가 누구인데」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그것에 알맞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聖賢君子가 되라 하면,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들을 닮도록 노력하자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고들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부처의 자비, 공자의 인, 소크라테스의 질서가 서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克己復禮인 것이다. 즉,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禮를 행하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생물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하여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면과 사랑과 소속의 욕망이 있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아실현의 욕망이 있어 삶의 보람을 갖게 된다. 그 기본적인 욕구의 총족도는 항상 나와 남과의 관계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먼저 자기를 뒤돌아보고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인격으로서 대접을 받을 것인가에 유념해야 한다.
禮節의 정신은 네가지다. 첫째,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이요, 둘째는 양보하는 정신이요, 셋째는 상호화목의 정신이요, 넷째는 남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질서에는 위치질서, 역할질서, 관계질서가 있어 그것을 항상 지켜나가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이 세가지 질서가 인간관계 형성의 근간이 된다. 자기가 있을 곳에서 맡은 바를 알고 약속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융통성을 발휘하려다 본질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열차가 철로를 따라 가는 것같이 업무수행도 괘도가 정해져 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친절이다. 당연히 될 것을 어렵게 만들어 나중에 공치사를 들으려는 속셈이 있어서는 안된다. 「공무원이 친절해야 한다」는 말의 시발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여겨진다. 바르게 말을 해도 그렇게 알아듣는데는 말하는 사람의 복장이 터진다. 이것은 서로 신뢰하지 못한대서 오는 결과이다. 「될 것은 안되고 안 될 것은 된다」는 불평스러움이나 못마땅함은 모두 불신에 기인된 것이므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과정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친절인 것이다. 여기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먼저 듣고, 듣는 것도 이야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끝까지 들으려는 성실함을 보이면서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말을 해주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다든지 조리없이 불쑥불쑥 내뱉는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은 힘드는 일이다. 그래서 극기(克己)인 것이다. 그래서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양보한다는 것은 자기의 주장이나 공무를 흥정의 대상으로 하여 일부를 면제하는 등의 말이 아니다. 상대를 수용하려는 자세를 갖고 가급적이면 그 요구를 될 수만 있다면 도와주려는 생각을 가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상호화목의 정신이라 함도 근본은 남을 돕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실됨과 즐거움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스마일 운동도 이것의 일환일 것이다.
내가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남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禮라는 덕은 서(序)와 양(讓), 화(和) 그리고 경(敬)으로 이루어 진 것이고, 그러므로 禮는 공무수행의 요체인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